인포메이션 –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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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과학자 출신이 아닌 사람이 쓴 과학책에서 너무나 놀라운 통찰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 중에서도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제임스 글릭(James Gleick)을 꼽을 것이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문학과 언어학을 공부했고, 뉴욕 타임스에서 오랜 동안 기자와 편집자로 일을 했으니 우리로 치자면 전형적인 ‘문돌이’다. 그렇지만, 그는 세계에서 가장 통찰력이 넘치는 과학서적을 집필한다. 그가 이런 멋진 책을 쓸 수 있는 것에는 아마도 뉴욕타임스에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의 이야기와 인터뷰를 실었던 그의 경력이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특히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카오스Chaos>는 ‘나비 효과’라는 단어를 전 세계에 유행시켰고, 단숨에 그를 최고의 저자의 반열에 올렸다. 그 이후에도 제임스 글릭은 훌륭한 책을 많이 집필하였지만, 2017년 벽두에 국내 번역본이 출간된 <인포메이션Information>에 필자는 또 다시 큰 감동을 받았다.

사실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것은 2011년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출간되기까지 6년이나 걸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며,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약간 김이 빠졌다. 왜냐하면 필자가 앞으로 10년 정도의 목표로 삼은 일 중의 하나가 <정보와 지능 Information and Intelligence>라는 거대한 주제에 대해 수많은 학문을 넘나들면서 여러 각도로 조명하는 집대성 작업을 하겠다고 작년 말에 선언하고 실제 블로그를 통해 영문으로 매 주 글을 하나씩 써서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정보와 지능을 중심으로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자연과학에서 정보는 데이터의 분석과 결합을 통해 만들어지는 산물로서 원래 투입한 신호가 그대로 전송되는 과정과 조건을 일반적으로 의미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우주의 탄생으로부터 현재와 미래까지 시간적, 그리고 공간적 분석 범위를 확대시켰을 때 정보는 우주와 생명, 그리고 인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법칙들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우주의 시작부터 지구의 형성과 생명의 등장, 그리고 인류의 출현 과정을 통해 수많은 정보들이 발생했고, 이와 같은 정보들을 축적하고 활용하면서 인류는 다른 어느 종보다도 급속하게 진화했다. 약 700만 년 전에 공통조상으로부터 유인원과 인류가 분화되면서 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연환경의 변화에 적응했고, 그 결과 생활방식이나 문화도 달라졌다. 특히 인류는 급격한 자연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보들을 축적하고 교환했으며,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정보들을 다음 세대에 효과적으로 전수함으로써 다른 종들과는 전혀 다른 생활방식을 영위하기 시작했다.

IT기술이 데이터와 만날 때에는 “디지털(digital)”이라고 부르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개념으로 이를 처리하게 된다. 디지털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입자가 바로 비트(bit)이다. 빛이나 전기 등을 활용해서 On/Off 라는 2가지 선택으로 모든 것을 나눌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비트인데, 그렇기 때문에 비트를 표현할 때에는 0과 1이라는 2개의 수만 활용이 되며, 이진법으로 표현할 수가 있다. 0과 1을 표현하는 방식을 처음 도입한 것은 역사적으로 1732년 바실 부촌(Basile Bouchon)과 쟝-밥티스테 팔콘(Jean-Baptiste Falcon)이 개발한 천공카드의 발명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이 기술은 IBM 등에 의해 초창기 컴퓨터의 개발 및 활용에 이용되면서 꽤 오랜 시간 비트와 디지털을 대표하는 기술로 각광을 받았다. 비트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오늘날의 기계, 전기, 전자기기들이 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가 통하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스위치, 빛의 On/Off, 전압의 고저 등으로 0과 1은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방식의 기기들이 비트를 활용해서 우리 세상을 표현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으면서도 전혀 무게도 나가지 않고,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원자를 얻게 된 것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IT기술은 전 세계에 커다란 변혁을 일으키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정보과학은 컴퓨터 과학의 경계를 넘어 총체적인 학문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제임스 글릭의 <인포메이션>은 필자의 접근방법에 비해 조금은 더 과학사와 클로드 섀넌을 중심으로 하는 정보와 연관된 수많은 학자들의 인생과 그들의 주장을 알기 쉬우면서도 통찰력있게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잘 정리된 정보과학의 역사를 정주행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프리카의 북소리에 담긴 코드와 알파벳의 탄생, 인쇄술과 사전의 의미, 그리고 기계로 이런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하려고 했던 찰스 베비지와 에이다 러브레이스 등의 이야기들을 시작으로 현대 정보과학에 기여한 여러 인물들과 기념비적인 논문들이 여럿 소개되지만,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구절과 의미를 몇몇 소개하고자 한다.

정보과학과 관련한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두 등장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임스 글릭이 가장 중요하게 다룬 인물은 단연 클로드 섀넌이다. 벨연구소에서 일했던 섀넌은 32세 때인 1948년 “통신의 수학적 이론 A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 이라는 기념비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특히 정보를 측정하는 단위로 ”비트(bit)”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논문은 이후 정보이론(Information Theory)의 원전으로 기록되는데, 단순히 공학분야에서 쓰이는 하나의 이론의 수준을 넘어서서 마치 뉴턴이 <프린키피아 Principia>를 발표하면서 고전역학을 정립한 것과 같이 이후 정보시대를 여는 역할을 하였다. 섀넌은 정보를 과학적 개념으로 만들기 위해 정보 개념을 단순화해서 최소 단위로 비트를 소개하였고, 동시에 정보와 불확실성, 정보와 엔트로피 개념을 연결시켰다. 이 논문에서 소개된 “정보 엔트로피”는 정보의 불확실성을 정량화하는데 활용되었는데, 예를 들어 동전을 던졌을 경우의 앞면과 뒷면이 완벽하게 1/2로 나오는 경우에 동전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 어느 한쪽이 나올 확률이 높을 때에 비해 정보의 양인 엔트로피는 더 큰 것으로 정의한다. 왜냐하면, 동전 던지기가 완벽하게 1/2의 확률로 나올 때 무작위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정보 엔트로피는 불확실성과 같은 개념이 된다.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정보의 양은 더 많아지고 엔트로피는 더 커지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깊이 감화를 받은 물리학자 존 아치볼드 휠러는 “비트에서 존재로It from Bit”라는 글을 통해 정보가 모든 존재를 낳으며, 모든 입자와 힘의 장, 시공연속체 자체가 정보라는 주장을 하였다. 그는 앞으로 정보 언어로 물리학의 모든 면을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는데, 실제로 이렇게 정보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디지털 물리학도 최근 크게 각광받고 있다. 이제는 물리학자들이 다양한 정보과학 분야에서 활약하는 것을 보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생명과학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양자역학의 선구자로도 유명한 에르빈 슈뢰딩거는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의 특강시리즈를 엮은 <생명이란 무엇인가 What is life?>라는 책을 1944년 출간했는데, 이 책에서 슈뢰딩거는 원자의 크기를 예시하면서 유전물질은 원자들로 구성되었고, X선 조사 등에 의하여 생기는 돌연변이가 구성원자의 변이로 나타나며, 유전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의 상호작용을 양자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유전체의 비밀을 모르스 부호의 예를 들어 몇 개의 기호의 조합으로 어마어마한 경우의 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생명체의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발달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하였다. 이 책은 이후 분자생물학이라는 생물학 분야의 혁명의 발단이 된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1953년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면서 정보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생명과학이 급부상하게 되었다. DNA 분자는 정보를 보존한다. DNA는 세대에서 세대로 자신을 복사하여 정보를 보존하며, 유기체의 형성 과정에 활용하기 위해 그 정보를 바깥으로 내보낸다. 정보 전달은 핵산에서 단백질로 전해지는 메시지를 통해 이뤄진다. 리보솜은 RNA 가닥에 맞물려서 한 번에 세 개의 염기들을 번역했고, 코돈 중에 잉여적인 것들은 시작 신호와 정지 신호의 기능을 하는 것도 있는데, 이런 잉여성은 정보이론가들이 예상한 바와 같이 오류에 대한 허용오차를 제공한다. 또한 잡음은 다른 모든 메시지와 같이 생물학적 메시지에도 영향을 미쳐 DNA의 오류와 오식이 돌연변이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처럼 1950년대까지 생화학에서 다루던 세포의 기능에 필요한 에너지와 물질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가 분자생물학의 시대가 되면서 정보의 흐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리처드 도킨스가 등장한다. 그는 생명체가 DNA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DNA가 수십억 년 먼저 등장했고, 우리들은 유전자로 알려진 이기적 분자들을 보전하도록 맹목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로봇 이동수단이라고 주장하면서 학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를 통해 유전자가 자기복제자(replicator)이며, 이들의 보존이 우리 존재의 궁극적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책의 말미에는 더 놀라운 ‘밈(meme)’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그는 밈이 모방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자신을 복제하고, 두뇌의 시간이나 대역폭과 같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서로 경쟁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밈의 운반자이자 조력자로 행동한다. 밈은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더욱 크게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었다. 인터넷은 밈에게 영양이 풍부한 문화적인 매체를 제공했고, 이 개념 자체에도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처럼 생명체와 문화의 영역도 정보의 틀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최근 떠오르고 있는 양자컴퓨팅에 대해서도 과학사적인 시각에서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IBM 연구소의 찰스 베넷과 롤프 란다우어는 폰 노이만 방식 컴퓨터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양자 정보과학을 창시한다. 이들은 기존의 정보이론을 설명하기 어려운 양자효과를 큐비트(qubit)라는 개념을 도입해 해결하는데, 큐비트의 0과 1 값은 확실히 구별 가능한 양자 상태들로 나타나지만 다른 확률로 0과 1을 향해 기울어진 중간 상태들의 연속체가 공존하는 것이다. 큐비트는 불확정성의 구름 내부에 살고 있는 확정적인 대상이다. 디지털이 아날로그의 세상을 복제하기 위해 샘플링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디지털 세계로 가져오는 과정을 거치지만, 양자컴퓨팅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방식을 그대로 정보화를 하게 되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고유한 역학을 가진 아날로그 컴퓨터라고도 할 수 있다. 큐비트는 확률을 내재하고 있고, 상태의 중첩을 포함하기 때문에 고전적 비트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진다. 예를 들어 현대의 가장 많이 쓰이는 암호 알고리즘에 이용되는 아주 큰 수의 소인수를 찾는 문제의 경우 현대식 컴퓨터는 사실 상 해독이 불가능하지만 양자컴퓨터는 이 문제를 해독할 수 있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형태의 정보과학은 완전히 새로운 정보처리의 방식과 이해를 요구하게 되기 때문에 양자컴퓨터가 보다 일상화되는 근 미래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형태도 크게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정보를 매우 넓은 의미에서 해석하였고, 또한 정보를 수많은 과학에 적용한 선구적인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엮어내는데 성공했다. 단지 일부의 이론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자면 당대 최고의 학자들의 성찬에 초대되어 새로운 시대들이 열리는 과정을 느낄 수 있다. 아쉬움이 있다면 ‘정보’ 그 자체에 집중했기 때문에 정보와 밀접하게 연결될 수 밖에 없는 지능이나 뇌과학, 그리고 인간과의 상호작용 등에 대한 내용들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필자에게는 다행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하고자 했던 일이 완전히 망쳐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고, 보다 광범위한 학문들을 연결하는 거대한 작업이 꼭 필요함을 더욱 느끼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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